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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

반어법을 즐기는 영국인

by Bonheur576 2022.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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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어법이 축소해서 말하기와 크게 다른 것은, 축소해서 말하기가 메시지의 미묘한 의미 전달이지만, 반어법은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이 정반대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서기를 타다가 어떤 사람이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자. 그는 분명히 심한 고통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기분이 썩 좋은 편이 아니라며 축소해서 말할 것이다. 반어법만큼 타인을 모욕하는 데 적절한 수사법도 없을 것이다. 직설적인 언어 사용에 익숙한 한국인들에게 반어법을 즐겨 쓰는 영국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민족일지도 모른다. 영국인들이 남을 모욕할 때 반어법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모욕적인 의도를 상대방이 알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이 경우 그 모욕적인 표현은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축소법을 즐겨 사용하는 영국인들의 습관을 철수는 같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축소해서 말한다는 것은 대상을 실제보다 덜 중요한 것처럼 꾸며서 실제로 느끼는 바를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부정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영국인들의 수사법을 지나친 낙천주의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 모든 것이 산산이 조각난다고 하더라도 사물의 밝은 면만 보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수백 개의 방을 소유한 사람이 그 집의 소유권을 상실했다고 하더라도 그는 평소에 시골에 작은 집이 한 채 있죠.’라고 말을 했기 때문에 크게 낙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노사 간의 분규로 파업이 발생하면 우리는 노사 양측의 극한 대립 양상을 목격한다. 외신들은 한국의 노사 갈등을 하나의 철로에서 마주 보고 돌진하는 기관차들에 비유하기도 한다. 파업이 발생하면 우리는 당사자들의 과격한 언행을 쉽사리 발견한다. 죽을 수는 있어도 물러설 수는 없다. 목숨을 걸고 투쟁하여 기필코 임금 인상을 쟁취하자. 화장터 결정에 참여한 시민단체는 자폭하라. 한국 사회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런 구호를 보고 대충 짐작할 것이다. 그들의 구호가 구호에 그치고 만다는 사실을. 수사법 중에서 과장법은 끝없이 뻗어가려는 속성이 있다. 왜냐하면 약한 비유법은 좀 더 강한 비유법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상대방은 화자가 말하는 의도를 아는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방향으로 언어의 과장 정도는 증대된다. 10%의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 10%의 임금 인상을 쟁취하자. 임금 인상이 아니면 사생결단을 내놓아라. 인간은 자극에 내성이 생기기 마련이다. 언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현대인들은 자극에 민감한 편이다. 보다 자극적인 표현을 찾는 현대인들에게 과장법은 특히 한국인에게 가장 효과적인 수사법 중의 하나일지 모른다.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타인의 말을 믿지 못하게 되었다. 그 책임은 개인보다 사회에 더 있을지 모른다. 얼마나 많이 속아 왔으면 공인들의 말을 반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을까? 특히 정치가들의 언행은 그 도가 지나치다. 결코 쌀을 수입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말은 조만간 쌀을 수입하겠다는 뜻이며, 민의를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말은 끝없이 당파의 이익만을 위해 서로 싸우겠다는 말로 들린다. 한 한국의 정치인이 기자 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이번 사건으로 말미암아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친 데 대하여 심심한 유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 문장에서 중요한 술어인 동사는 맨 뒤에 나온다. 한국어의 특징이 주어, 목적어, 동사의 순서인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이러한 어순이 우리의 사고방식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더 나아가 같은 내용을 다른 언어에서는 어떻게 표현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20021226일 일간지의 한국어판과 영문판의 사설을 비교해보자.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24일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을 낮의 촛불에 비유했다. 영문판 번역은 다음과 같다. KIM Jon-IPL, leader of the United Liberal Democrats, likened presidential elect Rho Moo-hun to a candle in the afternoon. 위의 문장에서 술어에 해댱하는 비유한다의 위치를 보면 영어와 한국어의 순서가 다름을 알 수 있다. 주어의 행동을 나타내는 술어 부가 맨 뒤에 온다는 것은 내용의 핵심이 뒤에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게다가 부정문의 경우 한국어에서는 부정의 낱말이 문장에서 가장 뒤에 오지만 영어의 경우는 오히려 동사 앞에서 부정한다. 문장의 순서와는 별개의 문제지만, 다른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대화를 할 때 핵심 문제를 제일 나중에 말하는 경향이 있다. 누군가에게 부탁할 때 이리저리 말을 돌리다가 헤어질 때 본론을, 그것도 아주 짧게, 말하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가? 그러나 서양인들은 핵심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중요한 말은 애당초 말머리에서 꺼낸다. 이러한 언어적 표현법의 차이가 사소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이러한 헤지 표현을 영국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물론 상대방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가능한 한 상대방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상대방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의도에서 이런 어법이 발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예를 들으시긴 좀 내보라고 말하는 것보다 시간을 내주셔도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이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거절하기가 더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헤지 표현의 상용은 영국인들의 이중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들은 결코 남 앞에서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최대한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면서 남을 배려하지만, 이면의 생각은 좀처럼 읽을 수 없다. 그들은 또한 축소해서 말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프랑스의 역사학자는 영국으로 떠나는 프랑스의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충고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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