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이나 사고방식의 차이는 표현법에 그대로 반영된다. 표현법은 언어적 표현법과 비언어적 표현법으로 구분되는데, 먼저 언어적 표현법의 차이에 대하여 살펴보자. 언어적 표현법에는 언어적인 수단과 비언어적인 수단이 존재한다. 비언어적인 수단에 대해서는 8장 언어 이외의 언어에서 자세히 다루기로 하자. 여기에서는 대화법의 차이에 관해서만 설명하기로 하자. 미국인과 일본인의 대화법상의 차이를 연구한 철수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차이를 기술할 수 있다.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한다. 양자택일. 신속하고 정확하다. 토론이나 투표한다. 위계 의식을 가지고 참여한다. 양자가 조화를 이룬다. 더디고 애매모호하다. 감정이입이나 합의에 이른다. 위의 표를 비교하면 한국인의 대화법은 일본인들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흔히 대화가 격해져 언쟁으로 번지면 우리는 대화의 본질보다는 위계 의식의 잣대를 가지고 본질을 호도하기 일쑤이다. 단적인 예로 도로에서 가벼운 접촉 사고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보자. 유심히 그들이 싸우는 과정을 관찰하면 결국에 가서는 나이 문제에 귀착이 된다. 즉, 나이 많은 사람이 유리한 입장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인들의 양자택일 대화법은 그들이 고안해 낸 시험 방식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바로 객관식 문제가 그것이다. 반면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경우는 미국식 시험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현행 대학 입시 과목 중에서 논술 시험의 원조가 프랑스라는 사실은 유럽과 미국식 시험 제도의 차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기업의 회의 혹은 동창회 같은 사적인 모임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한두 번씩은 이런 기억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먼저 의장이 그날의 안건에 대해 발의한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의견을 개진한다. 그다음에 의장은 각본대로 중의는 이러저러하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는 반대하는 사람이 없으면 박수로 안건을 통과시킨 것으로 하며 좌중의 동의를 얻어 회의를 마친다. 미국인들의 대화에서 특징적인 것은 그들이 절차보다는 본론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격식과 장소 등에 신경을 쓰지만, 미국인들은 대화의 본질 즉, 본론에 무게의 중심을 둔다. 그들에게 나머지는 형식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처럼 형식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인사 같은 절차는 때로는 본론보다 더 중요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대기업의 면접에서 인사를 안 하고 면접을 잘 치른 사람보다, 깍듯하게 면접관에게 인사를 하고 평범한 면접 점수를 받은 후보가 합격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의 정찰기가 중국 전투기에 의해 강제로 중국에 착륙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 문제는 일단 중국 측이 미국 승무원을 돌려보내 일단락되었지만 두 나라 사이의 예민한 외교 문제로 번졌다. 그런데 그 문제의 본질은 사건에 대한 두 나라의 상이한 입장 차이를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모였다. 미국 측은 중국 조종사의 사망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는 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미안하다는 정도로 사건을 무마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중국 측의 입장은 완강하였다. 중국 측은 사과받아야 한다며 한 발도 양보하지 않았다. 중국 측은 사람이 자기 잘못을 시인한다는 의미의 공식 사과 용어 ‘미안함’을 고집했다. 미국 국무장관에 이어 미국의 부시 대통령도 유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중국의 관영 신화사 통신은 부시의 유감이라는 단어를 완곡하고 다소 애매한 유감을 의미하는 ‘이한’으로 번역해 보도했다. 이에 대해 미국 프린스턴대학 중문과의 한 교수는 ‘이한’이라는 용어는 상대방도 잘못했을 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중국은 사과를 미국으로부터 끝까지 받아내려고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고, 미국은 최대한 미안함의 수준에서 사건을 종결하고 싶었다. 어떻게 생각하면 애들처럼 말 한마디에 지구상의 최대 강국들이 신경전을 벌였다. 도대체 말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 문제는 두 나라의 언어 차이에 기인하고 있었다. 중국어는 외교적 모호성을 표현하는 데 알맞지 않은 언어이고 영어는 완곡어법 같은 수사법을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두 언어의 번역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었다. 헤지란 울타리, 장벽이라는 뜻으로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구조물이다. 언어학자들은 말꼬리를 잡히지 않도록 빠져나갈 구멍을 계산한 언질을 헤지라고 부른다. 헤지 이외의 간접적인 언어 표현법의 주요 유형에는 축소해서 말하기, 반어법 등이 있다. 영국인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영국인들보다 개방적이고 제스처도 영국인보다 많이 사용한다. 그러나 외교 문제에 있어 직접적인 언어 표현은 자칫 외교 문제를 야기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영어의 완곡한 표현들은 적절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정찰기 사건도 영어의 이런 언어 습관을 중국인들이 이해를 제대로 못 했을 수도 있고, 미국인들이 고의로 자신들의 과오를 덮기 위해 영어의 간접 표현을 이용했을 수도 있다. 영어의 완곡하고 간접적인 표현을 보자. 이런 표현들은 특히 속내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영국인들의 기질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들이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내가 사과를 요청한 것 때문에 너무 마음이 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말을 바꿔 말하면 미안하게도 당신에게 그런 요청을 하여 마음을 아프게 했지만 넓은 아량을 기대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화를 내지 말고 자신을 이해해달라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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