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외국어를 학습하면서 해당 외국어로 대화할 때, 많은 장애에 부딪혀 의사소통에 애를 먹곤 한다. 그럴 경우 그 원인을 어학 실력의 부족으로 돌리는데, 곰곰이 따져보면 어학 실력의 차이만이 의사소통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외국어로 현지인과 대화를 해본 사람은 대화의 중단이 어휘와 표현법의 부족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그 원인이 설명하기 어려운 다른 곳에 있음을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우리 사회는 개인주의적 사회이기보다는 집단을 중시하는 사회이다. 언어는 흔히 사회의 거울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집단을 중시하는 우리의 전통은 언어에도 분명히 그 흔적을 남겨 놓았을 것이다. 그 증거로 한국어에는 일인칭 대명사 주어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불어처럼 인칭마다 동사의 형태가 다른 언어에서도 주어의 등장은 필수적이고 영어처럼 삼인칭 단수에서만 활용하는 언어에서도 주어는 항상 등장한다. 그러나 한국어에서는 일인칭 대명사 주어가 자주 생략된다. 이러한 특징은 개인보다 집단을 우선시하는 우리의 전통이 언어에 그대로 남아 있는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나보다 우리라는 대명사의 빈도가 훨씬 높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한국에는 영어 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현지인으로부터 과외 교습받거나 심지어 아동들이 직접 현지로 어학연수에 가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그러면서 혹자는 독일이나 네덜란드 또는 스웨덴 사람들이 영어를 무척 잘한다고 우리와 비교한다. 그러나 영어는 독일어에서 파생된 언어이고, 영어와 가장 언어학적으로 유사한 언어 중의 하나가 네덜란드어라는 사실을 안다면 왜 독일인들이 영어를 쉽게 습득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장의 구조가 상이하고 공통적인 어휘가 전무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는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에 사는 사람들이 의사소통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의 원인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과연 다른 문화의 의사소통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학적 지식의 차이뿐일까? 먼저 다른 문화 간의 의사소통에서 가장 큰 문제로 작용하는 요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을 보자.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은 서로 간의 의사소통에 지장을 줄 정도까지 다른 것일까? 다른 문화 간의 의사소통의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전문가들의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렇다’이다. 이들 전문가는 그동안에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상이함이 의사소통의 효율에 미치는 영향에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첫 번째로 그들이 알아낸 사실은 문화에 따라 사람들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은 상식으로 보통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크게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우리는 다른 문화 간의 의사소통의 문제를 문법적 지식 같은 어학적 관점보다는 문화적인 차이에서 조망해보자. 즉,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가 다른 문화 간의 의사소통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주는 예를 하나 들어보자. 90년대 초반 미국에 사는 한 재미 교포는 여느 때처럼 아이를 집에 두고 텔레비전을 켜둔 채 직장으로 나섰다. 그런데 집에서 혼자 텔레비전을 보던 아이는 장난하다가 그만 무거운 텔레비전을 떠안고 바닥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다. 현장에 달려온 어머니는 아이를 자기가 죽였다면서 경찰 앞에서 울부짖었다. 우리의 정서로 볼 때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한 부모의 절규를 그대로 보여준 대목이었다. 그런데 미국 경찰은 어머니의 그 말을 살인의 증거로 채택하고 말았다. 그들은 어머니가 자식을 학대하다가 살해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고 결국 아이의 어머니는 유죄 판결받았다. 위의 예시는 한국인과 미국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뿐만 아니라 영어와 한국어가 얼마나 다른 언어인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은 언어를 저문 맥 언어와 고문 맥 언어로 구분한다. 한국어는 문맥을 이해하지 못하면 오해를 할 수 있는 고문 맥의 언어이다. 그러나 영어는 문맥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언어 자체만으로 분명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저문 맥 언어이다. 위의 사건에서 미국 경찰은 정황은 무시한 채 어머니가 한 말만을 증거로 삼은 것이다. 이런 예도 있다. 필자가 유학 시절에 느낀 점이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수다스럽다거나 특히 남자는 입이 무거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그런 관습 덕분인지 외국에서 친구들과 대화를 주고받을 때 ‘저 친구는 내가 말을 안 해도 나를 이해해주겠지.’라고 혼자 생각했지만 그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그들은 생각이 있다면 그것을 말로 표현해야 이해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안면이 있는 사람들을 직장에서 만날 때 흔히 인사말을 건넨다. 그러면서도 그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유럽인들 중에서 원칙주의자인 독일 친구에게 이런 말을 건넨다면 그는 반드시 그 약속이 언제 지켜질지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다시 말해 똑같은 말을 들어도 문화 환경이 다른 곳에서 산 사람들은 그 말을 달리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치관과 사고방식이 민족마다 다르다는 사실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절대적인가? 아니면 상대적인가? 일부 학자들은 그 차이가 절대적인 것으로 가정하고 이분법적으로 가치관과 사고방식의 차이를 설명하려고 하였다. 연구는 미국인과 상반되는 사람들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을 대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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