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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학

호칭 문화의 차이

by Bonheur576 2022.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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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의 호칭 문제는 매우 중요하고 까다롭다. 우리는 처음 만난 상대방을 부를 때 난감한 경우에 처하곤 한다. 이름을 부를 수도 없고, 존칭을 쓰기도 애매하고, 직급을 부르면 너무 사무적인 관계로 경직될까 주저하게 된다. 한국의 호칭 문화와 다른 나라의 호칭 문화에 대해 살펴보자. 한 한국인 박사가 영국의 기업에서 일하게 되었다. 영국인 동료들은 그를 김 박사로 불렀다. 그 호칭이 김 박사는 싫지 않았다. 그런데 3년이 지나도 그 호칭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미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김 박사로 계속 부르면 상대방과 약간의 거리를 두겠다는 뜻이고, 대개의 경우 친숙해지면 이름을 부르는 것이 상례이다. 북미에서는 회사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동료의 이름을 부른다. 만약 한국 회사에서 말단 사원이 부장의 이름을 부른다고 생각해 보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북미에서 미스터와 닥터는 존칭을 나타낸다. 그런 까닭에 자신을 소개할 때는 미스터나 닥터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이름과 성을 말한다. 친숙한 모임이면 자신의 이름을 불러도 된다고 얘기한다. 유럽의 프랑스에서도 미스터에 해당하는 무 슈와 부인에 해당하는 마담은 존칭에 해당한다. 초면의 여성이 기혼인지 미혼인지 모를 때에는 그냥 마담으로 호칭하는 것이 관례이다. 서양인들의 호칭 문화와 한국인들의 호칭 문화에서 가장 큰 차이는 서양인들은 이름을 부르지만, 직급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서양인들은 자신의 직업을 소개한 뒤 이름을 불러달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는 김 대리’, ‘박 부장’, ‘최 이사등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겪은 경험이다.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회에 나갔다. 다른 모임과 마찬가지로 친구들은 명함을 교환하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상호 간의 호칭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유심히 관찰하였다. 그랬더니 친구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보다 송 판사’, ‘이 차장’, ‘김 원장’, ‘이 원장등으로 직업이나 직급을 부르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사장이라는 호칭도 많이 나올 법했지만 나가면 사장이 아닌 사람이 있을까? 그래서 사장이라는 호칭은 듣지 못했다.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다. 한 미국인이 한국인 친구를 다른 한국인에게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다. 미국인은 다음과 같이 한국인 친구를 소개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판사라는 친구의 이름은 직업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미국인 친구는 주변의 한국 친구가 사용하는 판사라는 호칭이 그 친구의 이름인 줄 알았다. 캐나다에 이민한 한국인이 충격적인 문화 체험을 한 경우도 있다. 한국인이 들어간 직장은 작은 규모의 회사였다. 회사 동료 중에는 예순이 넘은 안테나 엔지니어가 있었다. 그런데 그에게 전화가 오면 젊은 여자 비서는 외치는 것이 아닌가? 한국인 사원에게는 신선한 문화적 충격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서구에서 항상 나이와 관계없이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상호 간에 동의가 있었거나, 한 사람이 그렇게 부르도록 허락한 경우에 한정된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학생들이 이름을 부를 경우, 대개 선생님은 언제 자기 이름을 불러도 된다고 했냐며 반문할 것이다. 호칭 문화의 경계는 이렇듯 신중을 가해야 하는 문제이다. 한국 사회는 전통적으로 유교에 뿌리를 둔 장유유서의 사회이자, 철저한 위계질서에 의해 통제되는 사회이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히딩크 감독이 축구팀의 전력을 배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한 일은 전술 훈련이 아니라 선수들 사이의 호칭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호칭 대신 선후배 사이에도 이름을 부르게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우리 사회에서 호칭의 차별은 성별의 구분에서 비롯된다. 여자가 결혼한 뒤에 생기는 문제를 살펴보자. 여자는 남편의 형제를 도련님, 아가씨 등으로 부른다. 봉건 사회도 아닌데 아직 도련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앞에서 호칭에는 직접 호칭과 간접 호칭이 있다고 언급했다. 결혼했을 때 남자는 처부모에게 장인, 장모의 직접 호칭을 사용할 수 있고, 장인, 장모는 간접 호칭으로도 사용된다. 그러나 여자의 경우를 보자. 며느리는 간접 호칭으로서 시아버지와 시어머니는 사용할 수 있지만, 직접 호칭일 경우에는 아버님 혹은 어머님으로 호칭해야 한다. 얼마나 불평등한 경우인가? 혹자는 한국 사회가 진정한 민주 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호칭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존대법을 없애거나 상호 존대법을 사용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지적에는 수긍이 가는 구석도 있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있었던 대통령 선거 토론회에서 한 후보는 당의 대표를 호칭하자 그 당에서는 당연히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호칭이란 것은 이렇듯 상호 존중의 약속이 지켜져야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라틴 문화권에서, 특히 불어의 조어가 되는 라틴어에 두 종류의 이인칭 대명사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 로마 제국의 영역은 로마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제국이 방대해지면서 콘스탄티노플에 제2의 황제와 황제의 자리를 마련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기원전 4세기경 사람들은 로마의 황제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래서 그것은 두 황제를 지칭하는 복수의 의미를 함축하게 되었다. 후에 사람들은 다른 주요 인물을 호칭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것이 오늘날 알고 있는 호칭의 이중적 체제를 유래한 기원이 된 것이다. 라틴 문화의 장녀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에도 두 개의 이인칭 호칭이 존재한다. 친구 사이나 부모와 자식 사이에서 사용하는 존칭이 그것이다. 필자의 경험담을 하나 소개하겠다. 대학원 지도 과정에는 필자는 초로의 프랑스 교수로부터 논문 지도를 받게 되었다. 그런데 프랑스인의 경우 나이와 관계없이 인간적으로 가까워지면 그 호칭은 자연스럽게 바뀌게 돈다. 그러나 유교 문화권에서 교육받은 필자는 끝내 지도 교수를 호칭으로 부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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