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족 간의 호칭 문제는 그 집단의 혼인 제도와 가족 제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인류학자들의 관심을 끌어왔다. 문화인류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기록이 없는 집단의 인간관계를 호칭하여 살펴볼 수 있다는 면에서 호칭은 좋은 자료가 된다. 우리는 아버지의 형제와 어머니의 형제를 구분하여 부른다. 친족 호칭은 직접 호칭과 간접 호칭의 두 가지로 구분된다. 직접 호칭은 형, 아버지처럼 직접 부를 때 사용하는 호칭이고 간접 호칭은 사촌 형 같이 다른 사람에게 친족 관계를 밝힐 때 사용하는 호칭이다. 인류학자들이 구분하는 친족 호칭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친족 호칭의 체계 중에서 가장 단순하고 호칭의 수가 적은 것이 하와이형 친족 호칭이다. 하와이형 친족 호칭의 특징은 아버지 세대에 모든 남자에게 아버지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어머니 세대의 모든 여자에게는 어머니라는 호칭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또한 같은 세대의 사촌들을 자신의 형제자매들과 구분하지 않고 같은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어떤 학자는 하와이형 호칭을 난혼의 흔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북미의 동북부에 사는 토마스 인디언들의 친족 호칭 체계에 따라 불리는 이 유형은 아버지와 삼촌이 같은 호칭으로 그리고 어머니와 이모가 같은 호칭으로 불린다. 그러나 하와이형과 달리 고모와 외삼촌은 각기 아버지와 어머니의 호칭과는 구분된다. 자기의 세대에서는 평행 사촌인 친사촌과 이종사촌은 자기의 형제자매와 같은 호칭으로 불리고 교차 사촌들에게는 형제자매와는 구분되는 호칭이 사용된다. 토마스 친족 호칭의 특징은 자기와 같은 친족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평행 사촌과 삼촌 및 이모에게는 각기 자기의 형제 매와 부모에게 사용하는 호칭을 적용하지만, 다른 친족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고모, 외삼촌 및 교차 사촌들에게는 자기 집단의 사람들과는 다른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토마스 인디언의 친족체계를 처음으로 연구한 마이크는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어머니와 이모의 호칭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들의 혼인이 단혼제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라고 유추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 에스키모족의 친족 호칭은 서구인의 호칭 체계와 동일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에스키모족은 직계와 방계를 구별하면서도 아버지 쪽과 어머니 쪽의 친족을 구별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자기 세대의 경우도 형제자매만 구분할 뿐이지 나머지는 모두 사촌으로 호칭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서구인의 친족 호칭 체계와 동일하다. 에스키모 형 친족 호칭의 특징은 출계의 개념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친척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친족 원으로 간주하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세 종류의 친족 호칭의 유형에 따라 우리나라의 친족 호칭에 어떤 원칙이 적용되었는지 정리해 보기로 하자. 조부모, 부모, 자녀, 손자녀 등의 직계친족 원은 각기 종조부모, 숙부, 숙모, 조카, 증손 자녀 등의 방계 친족 워드로부터 구분된다. 우리나라의 친족 호칭에서는 상이한 세대의 사람에게는 같은 호칭이 적용되는 예가 없고, 모든 친족 호칭이 어느 세대의 친족 원을 가리키고 있는지를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같은 세대의 친족 호칭에도 연령은 중요한 호칭 구분의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형님, 누님과 동생, 누이동생 등으로 연령의 차이를 밝히고 있으며, 아버지 세대에도 백부, 숙부 등으로 연령의 차이를 구별하고 있다. 형수는 형과의 관계로 맺어진 호칭이고, 제수는 동생과의 관계로 맺어진 호칭이다. 마찬가지로 숙모와 백모의 경우도 같은 원칙이 적용되고 있다. 동생, 조카 등과 같이 몇 가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호칭이 친족 원의 성을 밝히고 있다. 말하는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가 호칭에 반영된다. 예컨대 같은 사람을 가리키면서도 남자는 형으로, 여자는 오빠로 불러야 하고 같은 사람이 남동생에게는 누님, 그리고 여동생에게는 언니가 된다. 나의 친사촌들 및 고종사촌들은 각기 삼촌 및 고모를 통하여 나와 관계를 맺고 있다. 다시 말해 삼촌과 고모의 성에 따라 그들의 자식들이 친사촌과 고종사촌으로 구분되고 있다. 어머니 쪽의 친족 원의 접두어를 모두 붙여 아버지 쪽의 친족 원과 구분하고 있다. 자기가 소속되어 있는 출계 집단인 부계 집단의 사람들은 인척인 처가 쪽의 사람들과는 호칭 상 구분된다. 혈연관계의 정도가 얼마나 깊은지에 따라 촌수가 친족 호칭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3촌, 4촌, 5촌, 6촌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촌수의 관습은 아마도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우리나라 고유의 것인 것 같다. 인류가 사회를 형성하고 집단생활을 한 이래 구성원들의 호칭 문제는 지금 생각해보아도 무척 흥미로웠을 것이다. 이미 언어가 의사 전달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면 의사소통 시 각 구성원은 어떻게 서로를 불렀을까? 옛날 우리의 시골 마을을 하나 그려보자. 한 마을에는 개똥이가 세 명, 이쁜이가 두 명, 간난이가 두 명 살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 아이들이 어울려서 놀 때 문제가 생겼다. 개똥이라고 부르니 여기저기에서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동네의 한 어른은 묘안을 짜내어 개똥이로 불렀다고 한다. 그 뒤로 개똥이의 구분에는 문제가 없어졌다. 서양의 경우 성씨는 이렇게 생겨났다. 본래 성이라는 한자에 변이 있는 것으로 보아, 어머니 집안으로부터 물려받았을 것이라는 유추가 가능하다. 실제로 중국의 경우 가장 오래된 성씨로는 강, 요, 흰 같은 성씨가 있는데, 모두 변이 들어가는 성씨이다. 이는 본래 인류의 집단 사회가 모계 사회에서 비롯되었음을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반대로 씨는 부계 사회가 되어 성이 몇 개의 가닥으로 나뉘어 분산되면서 생겨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사실상 이름을 지을 때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글자는 하나밖에 없다. 가문마다 항렬이 있어 석 자 중의 한 자는 이미 정해져 있다. 그러다 보니 외자 이름을 갖는 특별한 성씨는 수많은 동명이인을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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