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언어 우위론은 언어결정론이라고도 불린다. 여기에는 강한 가설과 약한 가설이 존재하는데, 먼저 강한 가설을 주장하는 학자들에 따르면 서로 다른 언어의 번역도 불가능하다. 일례로 신약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번역자들은 예수가 가파르나움에 내려오는 장면에서 번역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영어의 동사 구조가 각 동작이 그 장면에서 처음으로 행해지는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구분되기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 예수가 가파르나움을 처음 방문했는지 아니면 여러 번 방문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번역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언어결정론의 강한 가설을 따르면 각 언어 사이에는 번역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의 상황은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약한 가설은 언어가 사고나 인식의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개별 언어의 상이성이 사고방식과 문화의 상이성을 초래한다고 주장했던 학자는 미국의 언어학자 사피어와 그의 제자 워프였다. 이 두 학자의 가설은 앞에서 언급한 강한 가설과 약한 가설로 구분된다. 사피어와 워프는 언어의 유형이 언어 사용 집단의 사고방식이나 경험 양식을 결정하고, 나아가 문화 양식까지 결정한다는 가설을 폈다. 두 학자의 입장 차이를 강한 가설과 약한 가설에 비유한 것은 사피어는 언어가 사고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던 반면 워프는 언어가 사고를 결정한다는 주장을 폈기 때문이다. 먼저 사피어가 생각하는 언어와 사고와의 관계를 알아보자. 사피어는 언어가 객관적 세계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세계에서 형성된다고 보았다. 즉, 인류가 집단을 형성하고 그 집단이 사회로 진화하면서 그 사회의 유형에 따라 언어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아랍어에 낙타와 관련된 수많은 어휘는 중동 지방에서 낙타가 가장 중요한 가축이라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언어는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결국 언어는 사회가 객관적 세계를 인식한 다음에 형성된다는 말이다. 사피어는 언어의 영역 중에서 어휘만이 그 민족의 경험을 조직화한다고 보았다. 반면 문법은 언어의 영역에서 제외하였다. 사피어가 분석한 언어와 사회와의 관계를 알아보자. 첫째, 사피어는 언어를 사회화의 강력한 도구라고 생각하였다. 언어가 없는 사회적 관계는 존재할 수 없다. 공통의 언어를 소유한다는 것은 사회의 각 개체를 이어주는 연대감의 상징이다. 언어는 의사소통의 기능 외에도 관계를 맺거나 사회 구성원이 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어는 문화의 축적과 전달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둘째, 언어와 문화와의 관계는 단순히 기계적으로 인식될 수 없다. 형식과 내용으로 세분된 우리의 인식은 문화를 심도 있게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예를 들어 하와이 원주민의 호칭에서 ‘아버지’라는 말은 아버지의 형태 모두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한 언어를 통하여 우리는 그 집단의 문화를 보다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언어의 상징성은 문화권마다 다르다. 중국인들은 붉은색을 매우 좋아한다. 중국을 여행해 본 사람은 그들이 얼마나 붉은색을 선호하는지 실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문화권에서 붉은색은 동일한 의미를 상징하지 않는다. 언어를 사용하는 집단과 그 언어 사이에 단순한 일치는 없다. 다시 말해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는 많은 집단을 단순히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러시아어는 구소련 연방에서 공용 언어였지만 연방 내의 수많은 민족이 동일한 문화를 소유하고 있지는 않다. 셋째, 언어는 문화보다 점진적으로 변한다. 문화의 양식에는 그 집단의 주거 방식, 음식 문화, 의복 양식, 친족 관계 등과 같이 유형 또는 무형의 양식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의 양식은 새로운 문화의 양식에 의해 쉽게 대체될 수도 있다. 이런 면에서 언어는 한 집단의 문화 양식을 가장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는 자료체라고 말할 수 있다. 사피어가 언어와 사회의 상관관계를 중시하고 언어는 사회적 세계에서 형성된다고 주장했던 반면, 워프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사피어가 중시했던 어휘뿐만 아니라 문법이 사고 자체를 형성한다고 보았다. 워프는 언어 체계가 언어의 이면에서 사고를 생성하고 개인의 정신 활동을 지도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워프의 주장에 따르면 언어는 어휘와 같은 산물이 아니라 문법과 같은 사고 형성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각 민족은 언어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사고방식, 나아가 세계관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언어 우위론자들은 언어의 차이가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치며 개별 언어들의 차이는 그들의 세계관까지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브라운의 연구에 따르면 색채 경험을 부호화하는 데 영어가 타 언어보다 쉬웠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언어가 사고와 세계관을 결정한다는 가설에 따르면, 이러한 색채 어의 상이성은 본래 한국어의 기본색이 흰색, 검은색, 노란색, 파란색, 붉은색 등의 다섯 가지밖에 없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즉, 파란색이 주변의 유사한 색들을 총칭하게 된 것인데,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는 한국어 사용자는 아무도 없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가 객관적인 세계를 정확히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를 통해서 현실 세계를 본다는 것을 방증한다. 나바호 인디언의 경우 언어 자체가 형식에 따른 분류 작업에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 결과, 나바호 인디언의 아동들은 어린 나이부터 영어를 사용하는 어린이들과는 달리 형식에 따라 사물을 분류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이 사례 연구에 의해 밝혀지기도 했다. 그런데 언어가 사고방식을 결정한다고 결론을 내리는 데에는 문제가 있다. 에스키모의 언어에는 눈에 관한 어휘가 무척 많다. 그러나 에스키모의 언어에서 본래 눈에 대한 어휘가 많이 존재했는지 아니면 그들이 사는 환경의 영향을 받아 그러한 어휘들이 나중에 만들어졌는지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일반적으로 에스키모인들이 살던 북극 지방에서 눈에 대한 어휘의 중요성은 다른 지방보다 상대적으로 컸을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의 언어에는 눈에 대한 많은 어휘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 후 일단 만들어진 어휘들은 에스키모인들이 눈의 종류를 분류하고, 눈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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